언니에게 답함
지난 2025년 1월 6일 저녁. 그날 우리는 지난 달 발생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난데없는 계엄사태를 두고 울분을 터뜨리기도 하고 이해 안되는 저들의 정신세계를 황당해하기도 하며 단톡대화를 이어가고 있었죠. 평소 언니는 뉴스공장과 매불쇼 등의 링크를 자주 올렸어요. 신변잡사나 맛집 공유 등 일상에 매몰되기 쉬운 우리의 주의를 정치와 사회로 돌리고 풍부한 외부 세계를 끌어와 준다는 점이 언니의 매력이자 존경할 만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정치와 종교는 소모적 분쟁을 일으켜 부모, 친척, 친구, 애인 관계를 깨는 금기된 화제라는 통념이 널리 받아 들여지고 있죠. 여럿 모인 자리에는 그 통념을 신념으로 내재화한 이들이 정말 많아요. 배려가 몸에 밴 우리는 알아서 자아 검열하고 말조심 하지요. 그러니 이런 불편을 감수하지 않고 정치를 소재로 허심탄회하게 우리끼리 얘기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에요. 그러기에 그날 2000년부터 구독한 한겨레 신문에 실린 권혁철의 “안 보이는 안보”에 실린 내용 일부를 사진 찍어 올렸을 때도, 미스터리한 그들의 내막 일부를 조금 같이 알자는 순진한 마음뿐이었죠.
한국 군에서는 ‘예스맨’이 살아남아 진급한다

"45년 전 12·12 군사반란 때는 반란에 맞선 장군들이 있었지만, 12·3 내란사태 당시 불법명령을 거부한 장군이 없었다. ‘예스맨 장군’들뿐이었다. 부하 여군을 성추행해 2018년 불명예 전역해 민간인 신분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현역 장군과 대령에게 지시하고 ‘상관’ 노릇까지 했다. 그는 인사권을 쥔 김용현 전 국방장관과 친분을 내세우고 진급을 미끼로 군인들을 내란에 끌어들였다. 그런 뒷배로 진급하고 보직을 얻게 된 군인은 그가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를 수 밖에 없다. 쿠데타와 내란에 동조하는 ‘예스맨 군인’ 뒤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진급 경쟁’이 숨어 있다.”

순간 너무 놀라고 충격 받았죠. 매일 아침 인사하고 말 섞고, 성격 좋고 인격 훌륭할 뿐 아니라 아는 것도 많다 생각해서 평생 가까이 한 지인이 뒤에서 이런 욕먹고 있는 걸 처음 알게 된 느낌이랄까. 나만 모르는 이면을 세상은 다 알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까지. 그러나 선입견을 배제하고 직접 경험하여 얻은 결론을 중시한다라는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다, 25년을 겪은(요즘은 대충 보거나 자주 거르기도 하지만) 한겨레는 비판을 받을 수는 있지만 ‘한걸레’라는 심히 모욕적인 쌍욕을 들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언론플레이를 한 적이 없다는 심증을 있었기에 언니가 제안한 “내가 왜 중립을 지켜야 돼?”라는 유튜브를 듣기로 작정했어요. (난 평소엔 유튜브 거의 안봐요ㅜ.ㅜ)
한국 언론, 소멸해야 한다? 이미 소멸됐다 [저널리즘 선언] | 정준희 언론학자 | 알릴레오 북's 시즌5 4회 – Daum 검색
한국 언론, 소멸해야 한다? 이미 소멸됐다 [저널리즘 선언] | 정준희 언론학자 | 알릴레오 북's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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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디오는 지난 총선 전 2024년 3월 13일에 녹화되었고 “저널리즘(각주1) 선언”이라는 책을 두고 유시민 작가(이하 시민)와 정준희 교수(이하 준희)께서 조수진 변호사(이하 수진)의 사회 아래 얘기하고 있어요. 특히 시민(1991년 거꾸로 읽는 세계를 읽은 이래 변함없이 존경하는)(각주2)은 (00:09:45에서) “한겨레 기자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왜 한겨레가 어려워졌는지, 한겨레가 창간할 때 열화와 같은 시민의 투자와 헌신이 왜 나왔으며 지금은 왜 다 사라졌는지..”라고 얘기하고 있죠.
*각주1) 되도록 외국어는 안 쓸려고 노력했어요. 저널리즘도 언론으로 계속 쓸려고 했구요. 그래도 ‘헤게모니’나 ‘언론플레이’ 등 글맛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건 있더라구요.
*각주2) 작가, 교수, 변호사 등의 호칭 대신 이름을 쓸래요. 호칭이 들어간 순간 무형의 헤게모니가 발생해요. 그분들도 이해하실 거예요.
읽기 어려운 책이라는 시민과 수진의 엄살로 시작된 대화는 “저널리즘 선언”이 다루고 있는 언론의 구조와 문제(위기이든 몰락이든), 그리고 그 해결을 얘기하고 있어요. 특히 좋았던 건 배경지식이 없는 일반인을 대변하는 수진,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준희, 둘 사이를 이으면서 부연 해설하는 동시에 현재 한국사회와의 접점을 신랄하게 밝혀주는 시민의 유쾌상쾌통쾌한 논평이었어요.
제2장에 보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중 무엇이 뉴스인지 결정(!)하는 과정이 언론인데 그것의 3개의 구조-주체, 규범, 수용자-를 논하고 있어요. 그 중 언론의 주체(생산자)인 엘리트들은 그들의 무능과 부도덕성(각주3)이 현대사회의 발달로 여과 없이 드러남에 따라 그들이 생산하던 주류 언론과 함께 동반 몰락하고 있어요. 이전에 대중은 엘리트들의 지적 우수함을 믿고 그들이 대중을 대리하여 공익적 판단을 할 거라고 믿었지만 이젠 그런 신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언론의 헤게모니는 완전히 붕괴해버린 것이죠.
각주3) 엘리트 무능과 오만의 예
• 5/18의 북한군 개입설을 말하는 도태우의 발언이 어떤 팩트체크나 논평 없이 가치 있는 뉴스인양 나오고 이 말을 받아서 나경원과 국힘 의원들은 ‘다양한 의견을 존중해야 하고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라고 말하자, 이것을 또 언론은 여과 없이 전달한다.
• 오랫동안 독재에 부역한 언론 엘리트들은 민주화 이후 등장한 김대중, 노무현 등에 대해 기존 엘리트 시스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상고 출신!) 배척했고 같은 이유로 이재명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서울대 법대 출신 윤석열에 대해서는 그의 무능과 국가 지도자로서의 치명적 결점에도 침묵한다.
여기에서부터 시민과 준희의 한겨레에 대한 비판은 신랄하고 매서워져요.
그럼 언론의 규범은 어떨까요? 언론은 객관성(의견이 아니라 사실), 공정성(균형잡히게), 편향성(특정 정파에만 유리하지 않게)이라는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신생(!) 암묵적 동의가 있다네요. ‘거의 모든 한국 언론이 친윤부역이라서 안그래도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기계적 균형(!)이라는 명분으로 말이 안되는 반론/주장을 싣는 행태를 한겨레마저 답습한다. 특히 팩 저널리즘(=출입처 저널리즘)을 포기하지 못하고(각주4), 검찰, 행정부, 입법부 등이 제공한 정보를 배경이나 현장 조사 없이 그대로 내는 행태를 한겨레 마저도 했다’는 거예요. 처음 알게된 이 사실에 소름끼쳤어요. 이래서 내가 불안했구나.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광적인 검찰조사와 혐의사실 공표가 정신없이 이어질 때, 한겨레마저도 ‘떳떳하면 조사받으라!’라고 일갈한 것에 나도 많이 힘들었거든요. 이래서 한겨레를 한걸레라고 비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떠났구나 이제 이해했지요.
각주4) 한겨레 법조팀 검찰취재단이 했다는 말, “그래도 양질의 정보가 쏟아지는 것을 무시할 수 없는게 아닙니까?”
세 번째 수용자. 언론의 수용자인 대중은 예전처럼 언론의 헤게모니를 군말없이 인정하는 고분고분한 존재가 아니죠. 다양한 언론사를 취사 선택할 뿐 아니라 댓글로 공격까지 해요. 그러나 ‘한국의 주류 언론은 그 자체가 대자본이며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세력과 유착되어 있고 기득권을 위협하는 변화에 부정적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 친윤언론이며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고 건설사의 홍보지가 되어 있고 돈 받고 기사 내준다. 힘없고 돈없고 목소리 약한 사람들을 배제하고, 권력있고 힘세고 돈많은 사람들 쪽으로 균형이 완전히 쏠려있다. 이럴 때 진보언론이 가져야 될 규범이라는 것은 신문사 안에서 기계적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몸을 던져서 우리가 아는 저널리즘이 배제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변함으로써 그나마 세상의 균형을 조금이라도 맞추는 것이다.’
25년이 넘도록 한겨레를 구독해 온 이유는 그나마 한겨레가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실어왔다는 이유때문이었죠. 두서없이 떠오르는 것은 양심적 병역 거부, 페미니즘, 윤석열 정부 초 안전운임제 연장해 달라는 요구를 묵살받은 화물연대에 대한 심화 기사,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N번방 폭로, 호주제 폐지, 환경, 동물권.. 등이에요. 이런 주제에 대해 한겨레가 일관되게 그들 편에 섰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어요. 물론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 수 있고 특히 시민을 비롯해 한겨레와 절연한 사람들은 노무현과 조국 등 진보인사에 대해 한겨레가 양비론적으로 접근했고 기계적 중립을 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저들을 도와준 셈이 된 것이 못내 섭섭하고 원통한 일이 되었겠구나 짐작할 수 있어요.
시민은 말하죠. “나는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있다는 비난을 받으며 좌우 균형을 잡는게 중요하지 않느냐라는 소리를 듣는다. 개뿔. 내가 좌우 균형을 잘 잡는게 그리 중요하냐? 세상이 기울어져 있으니 누구는 반대쪽으로 해야 세상이 균형이 잡히는 거다. 한겨레가 세상의 균형을 잡는다? 오만한 과대망상이다. 그건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자본력도 있는 거대 언론인 뉴욕 타임스나 영국의 BBC도 못하는 거다. 심지어 BBC 방송국 앞에도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는 비난을 어마어마하게 받은 조지 오웰의 동상이 서 있다. 한겨레도 나처럼 편향되었다고 비난받으면 좋겠다. 창간 주주들도 그러라고 한거다.”
"한국언론에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가 없다. 그들은 그런 가치들을 추구해서 성장해 온게 아니라 독재에 부역해서 성장했다. 그들은 민주화 운동권이 가져다 준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며 민주화 이후 승승장구했다. 이후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자유주의를 확장하려는 노력에는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런 고민을 하는 건 한겨레 정도다."
"지상파, 공영방송, 한겨레, 경향 등은 언론민주화의 성과이며 소유구조가 그래도 공적이어서 개혁에 유리하며 그나마 언론개혁의 가능성이 조금 있는 곳이다. 다른 공적 미디어에서 개혁이 실현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늙은 개에게 새로운 재주를 가르칠 수 없듯이."
오늘날 언론의 수용자들인 대중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스스로 내거나 아니면 대변하는 목소리를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그것이 김어준이라는 진보(?)를 표방하는 철저히 정파적인 탈관습적인 현상이 생긴 원인이라고 해요. 더 나아가 자신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알릴레오라는 유튜브를, 이런 정도의 시설에서 할 수 있는 것도 6만여명에 달하는 후원회원 덕분이라고 해요. (나도 2010년부터 후원해왔죠)
요약하자면 시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한겨레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을 공감할 수 있었어요. 기계적 중립이라는 핑계로 결과적으로 기득권의 편에 선 것, 팩 저널리즘이라는 부패고리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 진보언론을 표방하면서도 주류 세계의 거짓과 불의에 충분히 가열차게 싸우지 않고 미적지근하고 어정쩡했던 것, 충분히 명시적으로 소외받는 대중을 존중하지 않은 것. 결국 얼마되지도 않은 자신들의 기득권에 안주하려고 한 것.
그러면 한겨레 절독하고 나도 비난자로 돌아서야 할까요? 알릴레오 전체의 목소리는 한겨레에 대한 적대시라기 보다는 원망이라는 느낌이었어요. "다른 이들은 그래도 너는 그러지 말아야지. 그런데 넌 어찌 그러냐. 차라리 너 안볼란다" 같달까. 나같은 평범한 독자들은 최종 지면만 볼 수 있지 한겨레의 중심 생산자를 직접 볼 수가 없어요. 실제로 성한용이라는 세속적으로 똑똑하고 간교한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 같은 분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도저히 참고 봐 줄 수 없는 그런 상황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을 생각해요. 마녀사냥을 당하시고도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고 담담하셨던 그분을 생각해요. 그런데, "남자한테는 여자가 서너 명은 항상 있어야지. 한 명은 가정용, 또 한 명은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뺑뺑이용, 그리고 또 한명은 인생과 예술을 논하는 오솔길용, 이 정도는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라는 농담을 한 사람도 그분이라는 것을 아세요? (<여보, 나 좀 도와줘> p.126) 운동권 청년들에게 이런 말을 하신 후, 그들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라며 <하늘의 절반>이라는 책을 추천했을 때, 그 책을 읽고 자신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깊이 후회하고 바로 잡으신 것도 그분이에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며 인연 끊었다면 그 후의 그분도 몰랐겠지요.
내가 더 현명한 사람이 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가려서 듣고 포용할 건 하고 버릴 건 버리구요. 한겨레를 계속 보겠지만 좀 더 까탈스럽게 관찰하겠죠. 그래도 윤석열이 소방청장 시켜 단전/단수하라는 언론사에 "MBC, 경향,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이어 한겨레도 끼여 있으니 좀 곱게 봐줄만 한가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