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07_양구_DMZ 펀치볼 둘레길_오유밭길
오늘 양구투어 목적지는 DMZ 펀치볼 트레킹이다. 숲나들e 홈페이지 → 숲길 → DMZ 펀치볼 둘레길에서 예약 가능하며 3일전에 해야 한다. ( https://www.foresttrip.go.kr/frtrlMain.do ) 출입통제구역이라 가이드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단다. DMZ 펀치볼 둘레길에는 4개의 탐방로가 있다고 홈페이지는 설명한다.
1. 평화의길 : 원점회귀 14.0km (약 5시간 30분 소요)
안내센터(시작) → 청용안 → 산채군락지 → 와우산 → 월경금지판 → 대형벙커 → 동막동마을 → 정안사 → 안내센터(종료)
- 군사분계선의 상징물(벙커, 교통호, 월북방지판, 철책 등)을 접하며 평화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와우산 자작나무숲에서 ‘평화의 숲’에 얽힌 전설을 듣는다.
2. 오유밭길 : 원점회귀 21.12km (약 7시간 30분 소요)
안내센터(시작) → 해안재건비 → 동막동마을 → 지뢰밭길 → 상상바위 → 구도로(쉼터) → 부부소나무 → 송가봉 → 성황당(쉼터) → 야생화공원 → 형제나무 → 안내센터(종료)
- 천연기념보호구역이자 산림유전자원보호림 내의 다양한 식생과 천연기념물인 217호 산양 등 야생동물의 흔적을 탐방하고, 해안분지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볼 수 있다.
3. 만대벌판길 : 원점회귀 21.9km (약 7시간 30분 소요)
안내센터(시작) → 구시장 → 귀롱삼거리 → 만대2교 → 냉장쉼터 → DMZ자생식물원 → 성황당(쉼터) → 먼멧재분기점 → 쌍솔 → 귀롱삼거리 → 안내센터(종료)
- 성황당을 지키는 졸참나무 보호수와 만나고 대암산 자락의 능선과 계곡을 오르락내리락 걸으면서 소나무조림지 아래로 펼쳐진 만대평야의 탁트인 경관을 감상한다.
4. 먼멧재길 : 원점회귀 16.2km (약 6시간 소요)
안내센터(시작) → 구시장 → 귀롱삼거리 → 먼멧재분기점 → 전차방호벽 → 먼멧재봉 → 군헬기장 → 서화옛길 → 지뢰지대 → 물골교 → 안내센터(종료)
- 후리 자작나무숲을 지나 DMZ 특색인 지뢰밭 길을 통과하여 대암산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금강산, 무산, 운봉, 스탈린고지 등 지금은 갈 수 없는 북녘산하와 남쪽의 설악산, 점봉산, 향로봉 등 산봉우리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먼멧재길을 어제 예약했으나 폭우로 취소되었고 오늘 오유밭길은 다행히 날씨가 맑다. 네 개의 탐방로 중 제일 볼거리가 많아 인기있는 코스라 한다.
09:20 까지인데 24km 정도를 40여분만에 달려 08:00 경 도착하다. 모임장소인 DMZ 자생식물원 방문자 센터는 문이 아직 열리지도 않았다. 하릴없이 주변이나 둘러 봐야지.

방문자 센터 맞은 편은 산과 들의 초목과 꽃나무와 데크길이 어우러진 공원이었고 뒤편에는 조각공원과 소나무와 자생식물 수집 공원이 있었다. 역시 눈길을 끄는 것은 이름도 모르고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러운 풀꽃"들이다. 자생식물원은 조금 더 높은 곳에 위치한 독립된 건물이나 출입구도 다르고 관광지라기 보다는 연구소였다. 일반인 개방도 안하는 것 같아서 방문 포기하다.
마침내 방문자 센터 정문이 열려서 주차를 하다.

지난 이틀(5- 6일)동안 줄기차게 내린 비로 마당엔 물이 고여 있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목을 축이느라 나를 신경도 안쓰는 눈치다. 그의 갈증해소에 행여 방해될까 살금살금 지나쳐 건물 오른편에 있는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리다. 벤치 옆 자작나무의 흰 기둥에 눈길이 쏠려 사진으로 남기다.
일행이 마침내 모이다. 산행안내인과 두 커플 포함 6명이다. 모두 방문기록지를 작성해야 했고 안전 관련 주의사항을 들은 후에 출발하다.
방문자 센터를 나가서 차를 타고 내려와던 길을 따라 도로 걸어 올라가다

가는 길에 있었던 전차방호벽. 유사시에 폭발물을 터뜨리면 윗부분이 도로로 무너지면서 적의 탱크 전진을 잠시 저지할 수 있다 한다.

돌산령 터널 바로 앞에서 왼쪽 길로 간다. 예전 돌산령 터널이 뚫리기 전에 해안면과 다른 지역을 이어주는 대관령 고개 같은 교통로였단다. 이제 돌산령 터널 개통으로 자전거 도로화 되었다는데 한적한 낡은 도로 한가운데를 활보하는 재미가 있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폭우로 도로가 유실되었는데 아직 수리가 안됐단다. 원래 오유밭길 트레킹 코스는 저 아래 숲길이었지만 도로를 따라 걷는 것으로 바뀌었단다.

숲길등산지도사?님은 거의 준식물학자였다. 주변 꽃과 식물들 특히 나물류를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한참 제철인 철쭉, 북한의 국화라는 산목련 (꽃이 예쁘다는데 아직 개화시기가 아니란다), 참두릅 등.

갑자기 "입산금지" "지뢰"라는 살벌한 출입금지 문 앞에 서시더니 주섬주섬 열쇠를 꺼내어 문을 딴다. 와~~ 남들이 못가는 금단의 구역에 들어 가는 것이 실감나는 상황. 본인은 문을 잠그고 조금 후 올라 가겠다면 잎갈나무가 보이면 그 길로 가라 하신다.


약 세시간에 걸친 트레킹은 식물학 강좌나 다름없었다. 지천으로 널린 나물들, 산마늘, 곰취, 미역취, 방울꽃, 붉은병꽃,둥글래, 기타 야생화 등등등...
한번은 숲길등산지도사분이 이것이 참나물이라며 잎을 뚝뚝 따서 먹어 보라고 주신다. 먹는 순간 입 안 전체에 허브처럼 가득 차는 쌉싸름한 내음. 그 향은 서너시간 지속된 트레킹 내내 입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수렵채집인이 되어 봄이 되면 온 산과 들을 헤매며 나물을 캐는구나 싶었다.
또 다른 설명의 주제는 전쟁이었다. 휴전 회담이 진행되는 시기에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고지를 중심으로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졌고 그 중 9개의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있었던 곳이 이 곳 양구란다. 지금도 지뢰 사고가 종종 일어나며 (70년이 넘었는데 그 지뢰는 부식도 안되냐는 우문에 기폭장치?는 부식이 안되는 금속으로 되어 있다는 현답을 주신다. "이 쇳조각 보이시죠? 이게 폭탄 파편이에요. 이런 것이 사람한테 박혀서 죽이는 거예요." 손가락 길이만한 나무껍질인지 쇳조각인지 구별도 안되는 것을 들어 보이면서 얘기하신다. 인간의 높은 지성을 끔찍한 살육을 연구하는데 쓰이는 광기. 이러한 광기가 줄기차게 이어졌던 역사 (특히 20세기) 현대에도 엄청난 이윤이 난다는 이유로 방산산업과 군수산업은 국가 기간 산업 중 하나이지. 여기에 우울해지면 현실을 무시한 (북한이나 중국 러시아 또는 일본이 쳐들어 오면 어떡할래?) 나약한 이상주의자가 되는 건가?

정상 쯤에서 내려다 본 풍경. 펀치볼(punch ball - 화채그릇)이라는 말이 보여 주듯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평지 - 전형적인 분지 지형이다. 바닥은 침식이 쉬운 화강암이고 산은 단단한 편마암이어서 이러한 지형이 만들어졌다 한다. 높은 산들이 품은 인간 거주지. 작은 공동체가 농사 짓고 평화롭게 살기 참 좋은 공간이지 싶다.

약 13시경 트레킹을 마치고 6km 정도 떨어진 양구통일관 전쟁기념관으로 향하다. 두 건물은 옆으로 나란히 이웃하고 있다. 사람들의 무관심을 보여주는 듯 오래되고 낡고 작다. 양구통일관은 남북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정보를 알려주면서 통일을 위한 국가의 노력을 전시하고 있었고 전쟁기념관은 양구에서 벌어진 9개의 전투를 중심으로 전쟁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었다. 양구투어버스를 타고 온 한 무리의 관광객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이동하고 있었는데 을근슬쩍 옆에 끼어서 귀동냥하다. 늙으수레한 할배들은 자신들의 전쟁의 추억을 자기들끼리 수다떠느라 가이드의 얘기는 흘려드는 눈치고 동년배인 듯한 여성 가이드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책임을 다하느라 열심히 마이크를 들고 설명하신다.
특히 인상적인 얘기는 민들레. 민들레는 유엔군 병사들의 군홧발과 군수품에 묻어 한국에 오게 되었단다. (처음 아는 사실!) 노란 민들레를 볼 때마다 그녀는 전쟁 따라 멀리 낯선 땅에 와서 피비린내나는 현실에서도 꿋꿋이 아름답기만 한 그 꽃이 사무치는가 보다. 더하여 "비목"이라는 노래가 이곳의 전쟁터를 배경으로 만들어졌으며 "태극기 휘날리며" "고지전" 같은 영화로 마찬가지란다. 겁없이 전쟁을 말하는 세태를 목청 높여 비난하면서 반전를 얘기하신다. 여기 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리디 어린 젊은이였다면서. 백번천번 맞는 얘기다.

가장 인상적인 조각상. 두 건물 사이 앞마당에 있고 트럭 승용차와의 비례감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큰 조형물이다. 이름은 the Greeting Man. 직역하면 "인사하는 사람"이다. 전쟁을 기념하는 두 건물 앞에서 누구에게 정중이 인사하는걸까. 군인같은 몸을 가진 성인 남자가 양팔을 몸에 딱 붙이고 깊숙이 숙이는 것도 아니라 정각 15도 인사를 하고 있다. 눈길이 가는 것은 불끈 쥔 두 주먹. 전쟁을 다시 겪어서는 안될 끔찍한 재난으로 생각하고 평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는 공손한 인사와 환영. 하지만 전쟁을 내가 필요하면 할 수도 있다라는 호전주의자에게는 불끈 쥔 주먹으로 맞서려는걸까.
20230815 덧붙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가 오늘 개봉했다. the Greeting Man의 불끈 쥔 주먹은 무기나 조건에 기대지 않는 순수한 평화주의자의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리라 생각해 본다.